박태원 - 이과풍경 (천변풍경 전과생 ver.)
게시글 주소: https://m.orbi.kr/00016519097
문돌이는 한길 대치동에 거의 쉴 사이 없이 깔린 현강을, 신기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싶게 수강하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의 얼굴에, 머리에, 등덜미에, 잠깐 동안 부러움 가득한 눈을 주었다.
“아버지. 우린, 대치동, 안 가요?”
“아, 대성패스 끊어 줬는데, 대치동은 뭣 하러 가니?”
아무리 패스가 있더라도, 현강 좀 들어 보면 어떠냐고, 문돌이는 적이 불평이었으나, 다음 순간, 그는 언제까지든 그것 한 가지에만 마음을 주고 있을 수 없게, 이제까지 문과 구석에서 단순한 모든 것에 익숙해 온 그의 어린 눈과 또 귀는 어지럽게도 바빴다.
현강도 현강이려니와, 웬 수학가형이며 과탐 실모가 그렇게 쉴 새 없이 뒤를 이어서 달리느냐.
어디 ‘모의고사'가 선 듯도 싶지 않건만, 학생들은 또 왜 그리 학원에 넘치게 들끓느냐.
이 층, 삼 층, 사 층…… 웬 학원들이 이리 높고, 또 그 위에는 무슨 독서실이 그리 유난스레도 많이 걸려 있느냐.
문과서, ‘영리하다’ ‘똑똑하다’, 바로 별명 비슷이 불려 온 문돌이로도, 어느 틈엔가, 제풀에 딱 벌려진 제 입을 어쩌는 수 없이, 마분지 조각으로 명찰을 만들어쓰고, 부교재를 돌리고 있는 조교 모양에도, 그의 눈은, 쉽사리 놀라고, 강대 앞 수많은 재수생들의 앞장을 서서, 몽당수염 난 조교가 신나게 부는 호루라기 소리에도, 이과 전과생 문돌이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게 들떴다.
그는 눈을 들어, 이번에는 학원 바로 위 독서실의, 간판이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이미 학원을 가지 않는 재수생들이, 칸막이 친 그 앞에 앉아서들 잡담을 하고, 더러는 샤프를 유난스러이 전후좌우로 놀려 가며, 그것은 또 무슨 장난인지, 그림을 그려 가며 문제 푸는 시늉을 한다. 그것이 ‘기하'라는 것의 연습임을 배운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의 일이거니와, 그러한 장난도 문돌이의 눈에는 퍽이나 재미스러웠다.
그러한 문돌이의 눈에, 강남과 대치동을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 모두가, 한결같이 잘나만 보이는 것도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냐. 졸업하고서도 교복을 입고 다니는 찐따 재수생이며, 깔깔이 입은 군필 5수생이며, 그러한 모든 사람은 이를 것도 없거니와 피씨방에 모여서들 담배 피우고, 나형이나 선택하고, 과탐부심이나 부리고, 그러는 패션이과 떼들도, 이들이 결코 문과가 아니라 이과일진댄, 그것들은 그만큼 행복일 수 있지 않느냐.
더구나, 문돌이는, 줄창, 이곳에만 있어, 오직 이곳 강의만 사랑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암만 좋은 강의래두, 밤낮 본다면 물리고 만다……’
그러나 이제 문돌이는 ‘초월함수'도 볼 수 있고, ‘공간도형’도 볼 수 있고, 옳지, 또 복잡한 계산이 없도록 여러 문제에 활용할 수있다는 ‘벡터’라는 것이 있다지 않나.
4수생 형 말을 들으면, 머리가 어찔하게 현기증이 나더라지만, 그것은 푸는 법을 몰라 그럴 것이다.
‘눈을 꼭 감고만 있으면 아무 상관이 없다……’
문돌이는, 말로만 들었지 정작 눈으로 본 일은 없는 ‘벡터’라는 문제를, 잠깐 머릿속에 아무렇게나 만들어 보느라 골몰이었으나, 어느 틈엔가 제 곁에 서너 명의 아이들이 모여 선 것을 깨닫고, 그들을 둘러보았다.
“얘가 문과 아이다, 문과 아이야.”
고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 그밖에 더 안 된 아이가, 옆에 있는 아이들을 둘러 보고 그렇게 말하니까, 모두 고만고만한 또래의 딴 아이들이,
“그래, 문과 아이야, 문과 아이……”
저마다 연방 고개를 끄덕이고, 고등학교 1학년이나 중학생조차, 잘 안 돌아 가는 혀끝을 놀리어, “문레기, 문레기.” 하고, 빤히 저를 쳐다보는 것에, 문돌이는 그러한 것에도 쉽사리 붉어지는 제 얼굴을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이, 문득, 등 뒤에서 요란스러이 울린 오지훈 강의 인사말 소리에, 그만 질겁을 하여 한옆으로 허둥대며 비켜서는 꼴을 보고, 그 결코 그렇게는 놀라는 일이 없는 ‘이과 아이’들이, “하, 하, 하” 하고 가장 재미있는 듯 싶게 한바탕을 웃었을 때, 문돌이는 귀밑까지 새빨개가지고 마음 속에 끝없는 모욕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저를 비웃은 아이는, 옆에 모여 선 그 애들뿐이 아니다. 개천 건너 이발소 창 앞에 앉아, 저보다 좀 큰 아이가 아까부터 제 편만 지켜보고 있었던 듯싶어,
“하, 하, 하…… 녀석, 놀라기는……” 하고, 그러한 말을 하더니, 눈이 마주치자, “너, 이과로, 오늘 바꿨구나?”
아주 장수생같이 그러한 것을 묻는다.
문돌이는 또 변변치 못하게 얼굴을 붉히며, 가까스로 고개를 한 번 끄떡하고, 문득, 부모를 떠나 외따로이 이러한 원룸에서 이제 어떻게 지내 가나 겁이 부썩 나며, 그저 아버지가 ‘수학 나형’에나 데려다 주고, ‘사탐’이나 구경시켜 주고, 또 ‘이기상’ 있다는 데로 데리고 가 주고, 그러한 다음에, 같이 문과로나 다시 돌아갔으면, 그러면 퍽 좋겠다고 침을 몇 덩어리나 삼키며, 저 혼자 속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0 XDK (+4,700)
-
1,010
-
10
-
10
-
10
-
10
-
100
-
10
-
10
-
100
-
흐흐
-
외대T3 3
영어 못하는데 한강작가여서 바로 해석했다 감사합니다
-
세종대 논술 2
어땠나여 논술 준비 1도 안하고 가서 쉬운건지 어려운건지 모으겟어요ㅜㅠ
-
진짜라고 해 줘... 여친은 됐고 그냥 인간관계만 맺을 수 있다면...
-
또래가없음ㅇㅇ..
-
확통-7, 공통-12점 입니다. 백분위 몇 정도될까요?
-
점메추좀
-
점심 묵자 2
피자 묵자
-
23학년도 지구때 1등급 맞았는데 지금와서 지구하는건 어떤가요? 3
요즘 엄청 고였다길래 ㅠㅠ 군수생이라 더 고민이됩니다
-
3년
-
과외알바를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한 매뉴얼&팁입니다. 미리 하나 장만해두세요~~...
-
이렇게 풀었는데 답이없는데
-
고등학교 온 후로 또래 중에 인사조차 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음 진짜 뭐 나중에...
-
동덕여대 갈래 2
나도 같이 모두를 위해 싸울래
-
약대 한의대 노릴거면 사탐2개가 나을까요 사1과1이 나을까요? 4
군수생이라 과탐 2개는 차마 못할거같은데.. 추천부탁드려요
-
일부로 가서 경멸당하는 게 목적이 아닌 정상적인 남성들은 동덕대 절대 안가서 변태...
-
다들 왜 함?
-
얼버기 10
?
-
한양대 답 맞춰보기 20
수리논술 오전입니다 1-1 91 1-2 270/7 --> 생각해보니 91을...
-
김범준 정병호 0
누구 들을지 고민됩니다ㅠㅠ
-
연대, 경희대, 외대, 이화여대, 건국대, 가천대 ex.) 서성한>=이대>=중앙대...
-
튀김찍여서
-
이번에 삼반수를 할 생각인데..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약대나 치대 목표로 하려구요...
-
서울 친구들보다 막차가 1시간 일찍 끊기는 경기도 외곽 시민은 서럽다...
-
현강추천좀 2
현강 국어 심찬우 or 심승리 수학 정병호 영어 이영수 ㅇㄸ? 생명 정석준 or...
-
시험이 실제로는 어려웠어도 다들 할만했다, 대충 1개빼고 다 풀었다, 무난했다 이런...
-
귀여워 5
-
수능 등급컷 탐구가 메가에서보다 한등급씩 올랏는데 뭐가 정확한겨? ㅠ 백분위도 10퍼나 차이나..
-
나란 미친새끼
-
언제 뜰지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찾아봐도 안나오네요 인강 듣고 싶은게 있는데
-
볼펜으로 쓰라는 게 존나 에바임 문제3쓰는데다가 문제2풀고 ㅋㅋㅋㅋㅋ
-
너무 자세하게 쓰나..
-
지문 읽다보니까 '아 일본 얃옹들 중에 모자이크 삭제라고 하는것들이 이건갑네 ai로...
-
여기서 미분계수 정의 사용하면 f=2x로 나오는 것 같은데 이렇게는 못 푸나요?...
-
논술 잘하는사람들은 14
수능수학은 그냥 100받음? 아무리봐도 수능수학보다 논술이 훨씬 어려운것같은데
-
폐에 문제 있나 싶어서 사진도 찍었는데 문제 없다함 진짜 ㅁㅈㄷㄴ 단순히 건조해서 그런건가.....
-
얼버기 11
-
아무 의미 없는건가요?? 8ㅁ8...
-
ㅈㄱㄴ 올해 기하 어땠나요
-
FAQ. 의대생들은 의사 망했다면서 왜 의대 자퇴 안 함? 43
1. 이미 학년이 차서 시간 매몰비용이 크거나 (이게 대부분임) 2. 수능 볼...
-
진짜 챔피언 삭제좀
-
논술말고 1
내년 수능준비하자~~
-
아직도너를 그렇게몰라
-
논술로 엄대엄 붙으니 걍 깨달아버림
-
하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긍정적으로 살기 힘든 것 같아
-
가천의 7번 7
a값 별 듣도보도못한 숫자나오길래 닷지쳤는데 수능수학으론 도저히 대비가안되네 ㅋㅋㅋ
-
논술메타인가요 0
다들 합격기원
-
학원한번가고나니까 이것도재능의영역같음 범부는정시로가자
재밌어요ㅋㅋ필력 조음
열심히쓰셨네요 ㅋㅋㅋㅋ
이륙허가
띵작...
현웃ㅋㅋㅋㅋ
이거 무슨소설 고치신거죠? 작년에 본작품이었는데 ㅋㅋ
천변풍경이여
제목에적혀있구나 ㅎㅎ 감사
ㅋㅋㅋㅋ
문제 "저보다 큰 아이"는 "옆에 모여선 그 아이들"이긴 하지만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오르비문학
문학ㅡ추
ㅋㅋㅋㅋㅋ ㅋㅋㅋ ㅋㅋㅋ
현웃터짐ㅋㅋㅋㅋ
ㅋㅋㅋㅋㅋ대박 ㅋㅋㅋㅋㅋ
ㅋㅋㅋㅌㅋㅋㅌㅋㅋㅋ 개웃기다
졸업하고서도 교복을 입고 다니는 찐따 재수생 ㅋㅋㅋㅋㅋ
미쳤다 ㅋㅋㅋ 되게 참신하고 신박하네요 ㅎㅎ
ㅋㅋㅋㅋㅋ
문과풍경도 만들어 주세요 ㅠㅠ
이과에서 문과로 전과한.버전좀요 ㅋㅋㅋ
재밌네요!!! 다음것 기대하겠습니당
이기상에서 터졌다
엌ㅋㅋ 겁나잘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