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9-02-15 13: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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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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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회는 그 군상을 전달하는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진술은 디지털화, 파편화된 오늘날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지만 요지는 쉽사리 이해된다. 누구나 갖가지 사실(팩트)을 접하고 경험을 하지만 그것 모두를 접하고 겪지는 못한다. 이유는 양이 너무 많고, 접한 정보조차 손쉽게 휘발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밀집시켜 사회발전의 전조를 위한 동력으로 삼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리하는 작업과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엔 작가의, 지금은 언론의 몫인 작업이다.


  요컨대, 좋은 언론은 파편화된 팩트라는 조각들을 관통시켜 진실을 전달하고 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예지하게끔 영감을 전하는 곳이다. 개인마다 저마다의 체험이 다르되 그 모두를 사회평균에 맞추어 나열하고 추상적 정의를 상정해 배열하는 작업은 고되다. 


  이런 의미에서 보도의 범위가 사실 차원의 협소함(각종 사건 사고)에 국한되거나 가짜 정치의 광역성(철지난 시국 및 경제진단)에 부유하지 않고, 사회라는 거대한 틀 안 속에 방향 및 영감을 담아낼 수 있었던 지금까지의 손석희는 행복한 언론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윤동주가 그랬고 빅토르 위고가 그랬으며 에밀 졸라가 그러했다. 그들은 같은 제도 하에 같은 수준의 억압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체험을 관통하는 글을 썼고 시원하게 정리해 주었으며 그 덕에 민족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오늘날처럼 파편화된 기호와 이념의 편린 속에 살아가는 일반 시민은 좋은 글, 좋은 언론을 찾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손석희는 지금 파편화된 사실의 단계에 이르지못한 이해관계 얽힌 분진과 관음의 먼지 속에 신음하고 있다. 그 신음이 달가운 이가 누굴까. 분진과 먼지를 손석희라는 당사자가 재단할 수 없는 지금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언론은 어디일까. 사실 우리 사회는 손석희를 탄생시켰지만 그라는 언론인을 유지시키기에는 덜 성숙했다는 느낌이다. 어느 누구도 찌라시의 파고에 흔들리는 손석희 곁에 기꺼이 가지 않는 지금, 음모론으로 흥했지만 끝까지 지조만이라도 지키는 김어준 정도가 눈에 띄는 건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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