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기차 [477377] · MS 2013 · 쪽지

2019-05-09 0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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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와 멀어질수록 그리움의 시간은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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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보다 춥다. 옷 갈아입고 가거라.



저녁 되면 춥다니깐.



불편해도 마스크 꼭 끼고 나가고.





잔소리.


또 잔소리..


그리고 잔소리...








어제보다 춥네..



저녁 되니 춥네..



마스크 챙겨올걸..






그리움...


또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








안녕하세요. 바나나기차입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은 아직,



5월 8일이 다 가지 않은 때입니다.



아마 이 글을 마칠 때쯤이면 이미 내일이 되어있겠지요.



그렇습니다. 5월 8일은 어버이날입니다.



어떻게 보내셨는가요?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제 이야기를 잠시 해도 될까요?





저는 서울에 있고, 부모님은 고향인 지방에 계시는데,



어버이날을 챙겨드리기 위해 하루 일찍인 어제 내려왔답니다.



꽃바구니와 카네이션 두 송이를 사서 집에 도착한 후에



같이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습니다.



제가 내려오면 부모님은 항상 돼지갈비를 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께서 고기를 아예 먹으면 안 된다고 하네요.



건강 때문에요.



참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돼지갈비가 아닌 월남쌈을 먹으러 갔습니다.



고기는 먹지 못하시고 각종 채소만 건져 드시는 모습을 보니,



채소만 먹었더니 배가 부른 것 같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 아팠어요.



그래서, 오늘은 아들이 서빙을 하는 날이라며



열심히, 열심히 채소를 가져왔어요.









저는 올해 초부터 부모님을 만나면 영상을 많이 찍었어요.



찍으면서는 어린 아이처럼 장난도 많이 쳐요.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웃는 모습을 담아 놓고 싶어서요.



어제도 마찬가지였어요. 



초상권은 무시한다며 동영상을 찍는다고 하고는



대뜸, 사랑한다는 말을 했어요.



사랑한다는 말을 쑥스러워하던 저인데 말이죠..



요즘은 이렇게 많이 노력하고 있답니다.



한 세 번 쯤 말하니 부모님도 낯 간지러워 하시면서도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제서야 핸드폰을 내려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이렇게나마 남겨놓으면 나중에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을 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때, 



그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요.



허공만 바라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사진만 바라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요.



그래도, 웃으면서 사랑한다 말씀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 나을까 싶어서요.











재수하시는 분들이 있으시죠?



저도 재수했어요.



삼수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 이상인 분들도 계셔요.



이 중에는 고향을 멀리 떠나와서 



혼자 생활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열심히 하고 계시죠?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 각자는 우리의 꿈을 위해 다짐하며 떠나왔지만



당신들은,



평생의 꿈이던 우리를 



눈물 흘리며 떠나보내셨지 않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꿈을 꾸지만



당신들은, 



그 멀리서 밤새 잠 못 이루다 



결국 잠에 들면 당신들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꿈을 꾸시지는 않을까요.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니 우리



열심히 해봐요. 



우리는 부모님의 평생의 꿈이잖아요.














오늘은 어제보다 춥다. 옷 갈아입고 가거라.



저녁 되면 춥다니깐.



불편해도 마스크 꼭 끼고 나가거라.










어제보다 춥네..



저녁 되니 춥네..



마스크 챙겨올걸..







저는 요즘에



휴대폰의 낯선 목소리가 알려주는 날씨에 



잔소리가 그리워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은 잘 와닿지는 않겠지만 기억해주세요.



잔소리와 멀어질수록 그리움의 시간과 가까워진다는 걸..







새벽이라 그런지 두서없는 글이 되어버렸네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한 분 계시는데요,



그분이 쓰신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할게요.







사진 보관함


                                 서덕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곳곳에 대못질을 했다.



아빠는 내가 못을 박은 곳마다


나의 사진을 말없이 걸어놓곤 하셨다.









어버이날은 지나갔지만 남은 수험 생활 동안



부모님을 더 생각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에게는 저의 주제넘은 글이 



복잡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죄송합니다. 위로가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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