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의생 아이유 [799225] · MS 2018 · 쪽지

2020-01-04 01: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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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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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로는 '공부하는 걸 직업으로 삼으며 살고 싶었고 공부 말고 다른건 못할거같아서 서울대에 꼭 가고싶었다'라고 말함

하지만 더 큰 이유는(물론 위의 것도 상당한 부분이지만) '실패했을때 나한테 주어질 조롱과 동정이 무서워서'였음

고2 6월 모의고사 때 뭔가 국어가 잘 안풀렸음 당시 어휘 문제가 좀 어려웠었는데

애들끼리 끝나고 답 맞춰보면서도 그게 제일 큰 쟁점이었음

어휘 문제는 사전에 찾아보면 바로 나오니까 휴대폰 안낸애가 찾아보고 답을 결정해줌. 내답은 틀렸었고.

틀리는거야 그럴수도있는데 문제는 애들하고 답을 같이 맞춰보았기 때문에 내가 이걸 틀렸다는걸 많은 친구들이 알고 있다는 거였음

교실 뒤에서 어떤새끼가 '야 xxx(내이름)도 이거 틀렸대'하고 존나 크게 말하는거 듣고 진짜 모든게 무너지는거 같았음.(아마 그새끼는 내가 듣고있다는거 자체를 의식을 안한듯함) 내가 뭐라도 틀리면 그게 흥미거리가 되는구나. 내가 뭐 잘 안되는게 있으면 그게 다른 사람들 대화 소재가 되는구나. 인간은 원래 저렇게 남의 불행에 천박한 관심이 많은가?

쉬는시간 내내 눈물 나오려는걸 계속 참았음. 뭐 그거 말고도 틀린게 좀 있었고 점수는 딱 1컷이었던 걸로 기억함. 기만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그게 내인생 최악의 국어시험이었음.

그날 이후로 나는 시험 쉬는시간에 시험지 답 맞춰보는걸 일체 그만했고 다른 사람들이 내 성적 가지고 이야기하는거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음. 고작 고2 모의고사 한문제 틀린거 가지고도 저렇게 뒤에서 씹어대는데, 내가 1등 자리에서 떨어진다면? 서울대 의대에 못간다면? 내 주변에서 나한테 보낼 조롱과 동정의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그럴바에야 차리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음.

아이러니하게도 이 감정이 이후 고3 생활 동안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그냥 아무 의대나 가면 안 될까? 의대는 어디든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넌 네가 서울대에 떨어졌을때 주변 시선을 절대 견디지도 못할거면서 그런 나태한 생각을 하냐?'라고 채찍질하며 이후의 생활을 지내옴.


뭐 결국은 서울대 의대에 붙었고 수능도 못 친건 아니어서(설의 급은 아니지만) 일단 고등학교 생활을 끝낸 이 시점에서는 조롱과 동정은 안 받을 거 같다.


그리고 그때 교실 뒤에서 소리친 새끼야.(그때 너무 빡쳐서 뒤돌아서 누군지 확인하겠다는 생각도 못했는데) 너 덕분에 내가 서울대 간거 같다. 존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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