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자몽º [7888] · MS 2003 · 쪽지

2012-04-15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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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이준구 교수의 '4.11 총선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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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의 교훈


  참으로 아쉬운 한판이었다. MB정부의 실정(失政)을 보기 좋게 심판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허무하게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책으로 서민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어도,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4대강사업을 밀어붙여도, 떳떳치 못한 방법으로 언론을 장악해도, 민간인 불법사찰로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도 우리 국민이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던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 모든 것이 지난 총선에서 집권여당에게 과분하게 많은 의석을 몰아준 업보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 업보로 인해 지난 4년 우리 국민이 견뎌내야 했던 고통이 너무나 컸다.

  무릇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이 그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MB정부는 거대여당의 힘만 믿고 위험한 독주를 계속해 왔다. 소통이 사라져 버린 일방통행의 사회에서 우리가 겪어야 했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거대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는 눈 감고 손만 드는 거수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진실을 철저히 외면하는 언론과 진실을 파헤칠 의사가 전혀 없는 검찰은 그 위험한 독주를 방조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부의 전횡을 견제할 그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 탓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견제 수단은 올해에 열리는 두 번의 선거뿐이었다. 선거를 통한 MB정부 심판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6.2 지방선거였다. 비록 통쾌한 심판은 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총선과 대선의 압승에 도취해 있던 MB정부에게 회초리를 들었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선거였다. 이어서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선거를 통해 MB정부를 결정적으로 심판할 수 있는 기회가 무르익었음을 보여주는 한판의 승부였다. 그 선거가 끝난 직후의 분위기로 보면, 올해에 열릴 두 번의 선거가 MB정부에 대한 준열한 심판의 장이 되리라는데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뒤로 터져 나온 돈봉투 사건, 민간인 사찰 같은 대형 악재들은 집권여당의 참패를 거의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MB정부에 대한 절망감이 팽배해 있는 터에 그런 대형 악재까지 겹쳐진다면 아무리 지지기반이 튼튼한 정당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배겨낼 도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대선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총선만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날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역대 선거에서 이렇게 그 결과가 뻔히 내다보이는 것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야당의 승리는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집권여당이 또다시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닌가? 그 동안 선거를 통해 MB정부를 심판하겠다고 단단히 벼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린 것인지 도무지 그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을 때 무언가 찜찜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막말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그것이 야당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실 표심(票心)이라는 게 조금 변덕스러운 점이 있어서 상황에 따라 크게 요동칠 수 있는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그 막말 파동이 선거 결과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것을 보면 우리의 선거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 매우 효과적인 선거전략일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집권여당도 네거티브 캠페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악재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라면 선거 전에 터진 민간인 불법사찰만큼 좋은 소재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말인데, 이것을 네거티브 캠페인에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그 파괴력은 거의 메가톤급 수준에 이르렀을 것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논문 표절 사건도 막말 파동에 못지않게 좋은 네거티브 캠페인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엄밀하게 말해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을 따지자면, 막말로 물의를 빚은 사람보다는 남의 논문을 표절한 사람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갖는 것이 사실이다. 막말을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인품이 의심될 수 있을 뿐, 막말이 그의 진실성이나 성실성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직접적 원인은 아니다. 반면에 교수가 남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것은 학자로 갖춰야할 기본적 덕목인 진실성과 성실성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중요한 사안이다. 제자들의 학문적 부정행위를 바로 잡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 자신이 학문적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막말의 장본인은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간에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반면에 논문 표절의 의혹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표절이라고 말하는데도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했을 뿐이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대형 악재를 빼고 논문 표절 대 막말 파동만을 단순히 비교한다 해도 집권여당이 유리할 게 하나도 없는 구도였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은 기적처럼 네거티브 캠페인의 덫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일이다. 누구다 다 알고 있듯, 이 구도에서 보수언론이 집권여당을 위해 쏟은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물론 패배의 궁극적인 책임은 야당 자신에게 있다. 다 차려놓은 밥상을 스스로 걷어찬 것이 바로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야당이 예뻐서가 아니라 MB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야당을 응원했다. 4대강사업을 비롯해 그 동안 누적되어 왔던 현 정부하의 수많은 의혹들을 깨끗이 씻어내려면 야당이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야당의 승리를 바라왔던 것이다. 이런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점에서 야당이 더욱 밉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다 차려놓은 밥상을 걷어찼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4.11총선 결과의 성격을 야당의 패배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야당의 패배가 아닌 집권여당의 승리로 해석해야 선거 결과의 의미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집권여당이 선택한 몇 가지의 전략이 이번 승리의 핵심적 요인이었다. 막말 파문이 야당의 의석 몇 개를 날려 버렸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없었더라도 집권여당은 승리했을 것이라고 본다. 패배한 야당이 이 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음 번 대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선 박근혜 의원 중심으로 재편된 새누리당은 MB정부와 선을 긋는 전략을 통해 실정의 공동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그 동안 집권여당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MB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가능했던 점을 생각하면 정부와의 선 긋기는 비겁한 책임회피에 해당하는 일이다. 집권여당이 절대적 다수의 의석으로 밀어붙여 주지 않았다면 4대강 사업도 없고 미디어법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무리 당명을 바꾸고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고 변명해 보았자 실정의 공동책임자라는 손가락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공천과정에서 무자비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친이계 후보를 솎아내는 작전을 통해 MB정부와 집권여당이 한통속이라는 인식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선거가 시작될 단계에서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정권심판론이 잠잠해진 데는 이런 전략의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정부가 집권여당이 내건 복지공약에 우려를 표하고 나선 것도 의도된 것은 아니었겠지만 선 긋기 효과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민에게 정부와 집권여당이 각각 따로 논다는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정부와의 선 긋기는 현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집권여당에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선 긋기 전략이 집권여당에게 승리를 안겨준 결정적인 묘수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승리의 결정적 요인을 집권여당의 ‘좌클릭’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만약 집권여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던 시점에서 취한 옹졸한 태도를 그대로 견지하고 있었다면 막말 파문 같은 것 열 개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하더라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주자고 하는데 거기에 드는 2조원 때문에 나라 살림이 거덜이 난다고 난리를 치던 그 옹졸한 태도 말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연달아 드러난 바지만, 그런 옹졸하기 짝이 없는 태도는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승리는 거둔 결정적인 비결은 그런 판세를 재빨리 읽어낸 능력이다. 집권여당이 내놓은 공약들을 보면 바로 얼마 전에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MB정부와 집권여당이라 하면 재벌을 상전 모시듯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집단 같은 인상을 풍겼는데, 어느 새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재벌의 무소불위한 영향력에 통제를 가하겠다는 공약이 등장하게 되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지정책이 우리나라를 망친다고 떠들던 사람들이 야당에서나 내놓음직해 보이는 과감한 복지공약을 자랑스레 떠들기 시작했다.

  보수진영 내부에서는 이와 같은 좌클릭에 대한 불만이 결코 적지 않았다. 집권여당이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말았다는 비판이 들끓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좌클릭이 이번 선거의 결정적 승인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MB정부 4년은 우리 사회에서 보수를 표방하는 정책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정치적 풍토가 자리를 잡는 데 기여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날이 심화되어 가는 양극화의 문제를 ‘부자감세’로 풀려했던 어리석은 정책은 그 반동으로 복지정책에 대한 요구가 들불처럼 번져나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상황에서 집권여당은 살아남기 위해 그 동안 금과옥조처럼 간직해 왔던 보수적 가치를 미련 없이 내던지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선택은 극도로 현명한 것이었다. 바로 이런 좌클릭을 통해 침몰 직전의 집권여당을 구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학이나 경제학에서 등장하는 ‘중위투표자이론’(median voter theorem)에 비추어 볼 때도 그와 같은 좌클릭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중위투표자이론에 따르면, 투표자의 어떤 스펙트럼이 있다고 할 때 그 중간에 위치해있는 투표자, 즉 중위투표자가 선호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예를들어 좌우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있다고 할 때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후보보다는 중도적인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이다. 지난 번 대선 때만 하더라도 투표자의 분포가 상당이 보수적인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 옹호와 부자감세를 공공연히 외친 보수적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MB정부 4년은 국민이 그 동안 가져왔던 보수적 가치에 대한 기대가 헛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산교육을 제공했고, 그 결과 투표자의 분포가 과거보다는 훨씬 더 왼쪽으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가게 되었다. 이 흐름을 정확히 읽어낸 집권여당은 재빠른 변신을 통해 거의 모두가 패배를 예상하는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대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집권여당의 좌클릭에 대한 야당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느냐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기보다 오른쪽에 있는 상대정당이 좌클릭을 해오면 자신도 더욱 왼쪽으로 옮겨가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적합한 대응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대응이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데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표를 얻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하면 중도적 입장에 있는 유권자들의 표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표를 가장 많이 얻으려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역설적으로 상대방이 좌클릭해 왔을 때 자신은 우클릭으로 대응해야 한다.

  중위투표자의 이론에 따르면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 사람의 표를 얻어야 승리할 수 있다. 양당제하에서 그 중위투표자의 이념적 성향은 두 정당이 갖고 있는 이념적 성향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보수정당이 좌클릭을 한다는 것은 중위 투표자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때 진보정당이 좌클릭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중위투표자로부터 더욱 멀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야당의 좌클릭이 평소부터 자신을 지지해 오던 진보적 성향의 투표자들에게 더 큰 호감을 가져다줄지 모르지만 표만 갖고 따진다면 아무 이득이 없다. 선거에서의 승리가 지상의 목표라고 할 때 전통적 지지층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를 즈음해 집권여당은 과거에 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복지공약을 자기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놀란 야당은 더욱 광범한 복지 혜택을 약속하는 공약으로 맞섰다. 내가 보기에는 이것이 야당의 결정적 패착이었다. 아무리 복지에 대한 요구가 드높아졌다 해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는 보수적 성향이 상당 부분 살아남아 있다. MB정부가 보이는 정도의 보수성은 용납할 수 없다 해도 야당이 내거는 복지공약은 너무 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더군다나 보수언론의 부추김 때문에 과도한 복지정책의 부작용이 국민의 뇌리에 너무나도 잘 입력되어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런 생각에서 많은 사람들이 야당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집권여당에 표를 던진 것이 아닐까? 게다가 통합진보당과의 연합에 성공한 것도 야당에게 이득만 가져왔던 것이 아니다.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결속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했을 테지만, 중도층의 표를 잃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언론들이 마치 짜기라도 했듯 야당이 통합진보당에 휘둘리고 있다는 보도를 집중적으로 내면서 야당의 이념적 좌표가 실제보다 훨씬 더 좌측으로 왜곡되어 인식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집권여당이 내건 복지공약만도 제대로 실행에 옮기려면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복지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지만, 그렇다고 이 목표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주변의 여건을 고려해 가며 신중히 추진해야 단 하루라도 더 빨리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늦게 가는 것이 빨리 가는 것이라는 명언이 이 경우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야당의 복지 조급증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조급하게 서두는 것은 우리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야당 자신의 정치적 성공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다.

  다음 대선에도 이번 총선과 똑같은 구도가 형성된다면 야당이 필연적으로 패하고 말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다고 해서 야당에게 진보정당으로서의 색깔을 완전히 지우라는 말을 하는것이 아니다. 그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표심을 정확하게 읽고 자신이 서야 할 정확한 위치를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다수의 국민이 현재 상태에서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진보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흔히 말하기를 같은 해에 총선과 대선이 열리면 그 결과가 각각 엇갈릴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것은 먼저 이루어진 선거에서 패한 측이 패배의 교훈을 제대로 살렸을 경우에 한해서 맞은 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선거에서의 패자가 다음 선거에서 자동적으로 승자가 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엇이 패배의 원인이었는지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뼈를 깎는 자성의 시간을 갖는 정당만이 패배를 승리로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선거가 끝난 다음에도 무엇이 패인이었는지조차 모른다면 연패의 아픔을 맛보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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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자몽º · 7888 · 12/04/15 10:09 · MS 2003
  • 문짝 · 246718 · 12/04/15 10:20 · MS 2008

    이준구 선생님, 결국 중위투표자 이론 케이스 스터디였군요

  • Rick · 320175 · 12/04/15 10:26 · MS 2009

    스크랩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추억앨범™ · 6955 · 12/04/15 10:37 · MS 2002

    한 줄 요약 : 선거의 여왕, 그네공주

  • 동귀 · 251911 · 12/04/15 10:51 · MS 2008

    오랜만에 보는 이준구 교수님 글이군요. 말은 점잖게 해도 무지 열 받으신 듯 ㅋㅋ

    그리고 진보정당은 입맛에 맞는 정치를 못하는 것 같아요. 자기들 고집이 분명해서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걸
    꺼린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표를 못 받지.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잘한다고 생각지도 않아요. 걔들은 너무 뻔뻔해요.
    근데 결국 뻔뻔한 세력들이 승리자가 되어 축배를 들고 있으니... 세상은 그런 건데
    이제 야권도 실속을 챙길 수 있는, 다소 뻔뻔하고, 추진할 의사가 없어서 거짓말에 가까운,
    그런 공약들도 좀 내세웠으면 좋겠네요.

    또한 안보에 있어서, 참여정부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고 우린 국방력 강화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다, MB정부는 게임도 안 된다, 안보도 우리가 잘한다 라고
    국민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콕 짚어서 확실한 표현으로 설명했음 하네요.
    왜 더 잘하고도 못하는 취급을 받는지 억울하지도 않나.

  • ㅁㄴ아러민 · 310529 · 12/04/15 11:08 · MS 2009

    언론플레이의 무서움은 진실을 거짓으로 보도하는게 아니라 진실의 중요성을 평가절하시킬때 있는거죠. 아주 이번에 절실히 알았음. 조중동과 방송3사의 프레임 안에갇혀있는이상 이번 선거 같은결과가 반복되지 말란법 없음.

  • 서울대말뚝 · 385016 · 12/04/15 11:55

    sbs는 제외아닌가요?

  • ㅁㄴ아러민 · 310529 · 12/04/15 12:44 · MS 2009

    음 글쎄요. 다시 생각해보면 기성언론의 프레임 바깥에서 그들에 대항하는 언론매체, 예를들어 나꼼수나 뉴스타파, 제대로 9시뉴스 같은, 그런 매체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리고 그런 매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자체만을 놓고 보더라도 기성언론들은 중립성의 의무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다고 볼수있죠. 물론 '진보적인 언론매체만이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양성을 추구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에게 한 쪽귀는 막고 있도록 만드는 행태가 너무 꼴보기 싫을 뿐입니다.

  • 12중대장 · 389979 · 12/04/15 12:35

    조중동보단 역시 공중파 위력이 쩔었죠. TV도 TV지만 라디오 뉴스 듣는데 진짜 1시간마다 박근혜로 시작해서 김용민으로 넘어감 ㅎㅎ

  • oric · 340707 · 12/04/15 11:25

    여당이 전략을 잘했고 야당이 다소 못한건 사실이지만 아무리그렇다해도 표심을 납득하기힘드네요. 민간인사찰과 막말을 같은 선에서 비교한다는게.. ㅡㅡ
    언론도 진짜 컸던것같아요. 국민들이 소식을 들을곳은 아직은 그래도 TV와 신문 매체인데, 언론탄압으로 인한 KBS,MBC,YTN이 파업을해서 선거기간 내내 뉴스같지도 않은 뉴스만 나왔고(하긴 파업안했어도 그랬겠죠) 지금 시국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줘야할 언론으로써의 자세는 잊은채 여당의 정치공세에 지원사격만을 퍼붓는 조중동은 전국구독률이 70%를 넘으니 대다수의 국민의 생각은 안타깝게도 여기 끌려다닌것같습니다. (어제같은 경우 민간인사찰을 옹호하는 기사까지 나오던데 기가차더군요, 시대의흐름이라는식으로말하는데)
    반대로 진보성향의 매체에서는 나올게 나와줬으나 경향+한겨레 합쳐서 구독률이 10%도 안되는게 현실, 인터넷이나 SNS매체는 이용이 아직 젊은이들에게 국한되있는게 현실이었고.. 참 씁쓸합니다. 어찌됬건 국민이 스스로 못봐준다는것이 드러났고 그 눈높이에 맞춰 전략을 짜야겠죠.

  • AbandonedSoul · 59684 · 12/04/15 12:13 · MS 2004

    확실히 사람을 빨려들게 하는 글이네요.

    확실히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패배한 이유는 다각도로 분석가능하지만, 가장 큰건 '순진한 사람들' 이라고 말하는게 제일 큰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12중대장 · 389979 · 12/04/15 12:30

    저도 박근혜의 복지코스프레가 주효했다는 생각을 하던참에 이준구 교수님께서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역시 선거는 '부동층(浮動層)' 잡기 싸움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