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말자 [401975] · MS 2012 · 쪽지

2013-12-09 19:46:56
조회수 9,030

희극보다는 비극이 어울리는 삶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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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혼자 무지개처럼 떠있는 것이 아니고
절망이라는 토대위에서 생기는 것이 희망입니다.
우리의 모든 힘, 이상, 꿈, 희망은 그 반대의
가장 무서운 어둠속에서 출발하는 겁니다.

-고은-


두달 쯤 전이던가?

토요일 마다 아침9시에서 오후6시까지 모이는 학회에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라는 주제로 원고지5매 정도 분량의 에세이를 써오라고했다.

우리는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에
얼마나 깊게 생각해 보았을까.

나 또한 그러한 문제에 예외는 아니기에 처음에는 굉장히 애를 먹었다.
나는 그러한 질문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교양수업에 들은 교수님의 이야기를 필두로 하며 원고지5매 분량의
에세이를 작성하였다.

나는 그 에세이에서 

나는 외향보다는 내향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또한 드러냄보다는 감춤이 익숙하고 
마찬가지로 토론보다는 사색이 어울린다
그리고 희극보다는 비극에 익숙하고
무언가를 응용하는 것보다는 그 본질에 다가서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축구공보다는 책을 좋아하고
자동차를 타는 것 보다는 지하철을 타는 것을 좋아한다.

라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다음 문단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타내줄 수 있을까?
이런 이야기들이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글을 경외하는 나는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언어가 인간의 삶을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딜레마에.
하지만 모든 것은 한계가 있는 법.
나는 어떤 삶은 언어가 재현하지 못한다고 짐짓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글의 내용은 물론이고, 글을 쓰는 형식까지도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라고, 믿는 나는
이정도 까지만 나를 드러내기로 결정한다.

이 정도의 이야기들이 원고지 5매 분량에서 할 수 있는
'당신은 어떠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었다.

사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규정하기 힘든 복합적 존재라고 믿는편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페르소나라는 사회적가면이 자신을 여러존재로 분할시켜 버리고
시간의 흐름속에서 무한한 우연들이 자신의 내면또한 변화시킨다.
바로 지금. 찰나적 순간만 보더라도, 인간의 내면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논리와 비논리, 합리와 불합리가 서로 뒤섞여있다.


나 또한 그러한 평범하고 복잡한 개인중의 하나이다.
나는 비교하지말자가 나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지인중의 몇몇이 익명으로 쓴 글을 보고
글에 비춰진 나의 모습과 실제 행동의 나의 모습에서 커다란 괴리가 느끼더라.

나는 나의 날 것을 대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면

글에서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내가 지향하는 나의 모습'이다.
추상적이지만, 나는 내가 적어놓은 글처럼 되고 싶다.
십년 이십년 뒤에는, 어쩌면 나는 나보다도 글을 소중히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또한 현재, 지금, 찰나에서의 나의모습은.
사실 '방어기제'가 필요이상으로 침투되어있다.
어쩌면..성숙한 방어기제인 억압,억제,승화부터
미성숙한  퇴화,희화화 까지.
나는 나를 드러내는데 굉장히 미숙한 사람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더라.
그래서 나 자신을 많이 감추고 싶어 하더라.

또한 타인들이 대하는 나 또한 참 어려모습이 있다.
대체로 지금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소통하는 통로가
인터넷에서의 수험생들, 봉사단체사람들, 동아리사람들, 학회사람들, 과동기들.
정도가 있는데.

이 다섯부류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모두 다르다.
사실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모두 다르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내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복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자유라는 것은, 다채롭다는 것은, 항상 불안을 동반하니까.
솔직해진다는 것은, 미숙하다는 것은, 항상 우울을 동반하니까.


이러한 규정할 수 없는 나 자신이 관심을 두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나는 희극보다는 비극에 더 관심이 많더라.

예능프로그램을 좋아하긴하지만
기억의 기저에 한 귀퉁이를 자리잡고 있는것은
감명깊게 읽은 멜랑꼴리한 소설, 아련하게 본 영화이고

즐겁고, 때로는 유치한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것을 좋아하긴하지만
기억의 기저에 한 귀퉁이를 자리잡고 있는것은
누군가의 원치않았다던 사연, 지우고 싶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더라.

오르비에서도.
내가 글을 감성적으로 써서 그런지
세상에는 비극보다는 희극이 많은데
나에게 도달하는 이야기들은 전부 전자쪽이다. 소수쪽이다.

어쩌면 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깍는 이야기는 소수만이 알고
자신의 이미지를 드높이는 이야기는 여럿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나약한 인간의 약점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 우리는 행복하고 싶은 것일까
행복해 보이고 싶은 것일까.

... 그래도...

사랑때문에 징징. 가정때문에 징징.
성적때문에 징징. 진로때문에 징징. 
경제력때문에 징징. 꿈때문에 징징.

이러한 이들과 동행하는.
나는 지금의 이 역할이 좋다.
문학쪽에 관심있는 나,는 
어쩌면 문학은, 이러한 역할을 위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보면 소모적인 삶. 쿨하게 즐기고
현재의 만족을 최대한으로 늘리는
공리주의적 관점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내가 바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도스토프예스키는 '죄와벌'에서 이야기했다. 

'자기 나름의 엉터리, 이것은 남의 말을 흉내내는 진리보다야
훨씬 좋지 않습니까? 이건 인간과 새의 차이랍니다.
진리는 달아나지 않지만 인간을 허수아비로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라고.

아이히만이 빠진.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 말하기의 무능성의
(한나 아렌트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참고)
덫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통제 불가능한, 시한부인 우리들은
엉터리로 사는 것이 온전한 자신으로 
남는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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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bandonedS · 59684 · 13/12/09 19:51 · MS 2004

    오르비에서 지켜본 바로는, 비교하지말자님은 저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과 성찰의 방향성이 상당 부분 유사함을 발견할 때는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AbandonedS · 59684 · 13/12/09 19:59 · MS 2004

    페르소나라는 것이, 과연 페르소나인가에 대한 고민은 아마 모든 인간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연 무엇이 나인가. 무엇이 페르소나인가.

    뜬금없이 던져 보자면, 저는 그 모든 것이 나이고 페르소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 페르소나를 만들어 낸 것이 사회라 생각하고 사회를 저주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지만, 결국 그 페르소나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게 제가 내린 심플한 결론입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덧붙이고 갑니다!

  • 수달스키 · 469180 · 13/12/09 21:27 · MS 2013

    이런 깊은 생각을 할 수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 라젠카 · 232827 · 13/12/09 22:10 · MS 2008

    궁금합니다. 제가 무엇때문에 마음의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는지
    제 마음에서 발동되는건데도 스스로 답하기가 어렵네요

  • 보르 · 346903 · 13/12/10 11:48 · MS 2010

    제가 비교하지말자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글을 읽을때마다 이따금씩 거울로 제자신을 보는듯한 착각에 깜짝깜짝 놀라기때문입니다 그러한 친숙함은 글 속에 담겨진 깊은 성찰의 측면과 함께 어우러져 글을 읽는내내 편안한 기분좋음을 느끼게 해주네요

  • twomoons · 440829 · 13/12/10 13:20 · MS 2017

    멋진 분이십니다..글에 감탄하고 가네요...글자 하나하나가 마음을 후벼파네요..후벼파냄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해주는 것도 같구요..앞으로도 이런 글 많이 써주세요..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설고경감 · 463721 · 13/12/10 13:22

    제 자신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정말 감사합니다..

  • VT_솔로깡 · 330158 · 13/12/10 18:19

    아 진짜 이분은 대단하신듯.
    저절로 팬이 되고 싶어집니다.

  • 14skku · 418338 · 13/12/10 20:44 · MS 2012

    와 어떡하면 이렇게 깊은 생각을 ..

  • مكتوب · 414727 · 13/12/11 14:34 · MS 2019

    ... 우리는 행복하고 싶은 것일까

    행복해 보이고 싶은 것일까.

    저 또한 아직도 해결을 못한 문제입니다.. 휴

  • binnny · 564865 · 15/03/23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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