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수능을 마치며(커리어)
게시글 주소: https://m.orbi.kr/00061133714
여기에 글을 쓰면서 저의 과거 수능 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눈물을 삼키고 이젠 자신을 좀 정리할까 합니다. 부정적인 글을 새해부터 초반에 썼었지만, 정서상 좋지 않아서 다 지웠고 대신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이제는 쓰고 있습니다.더 이상 채원이한테 부끄럽지 않게, 24살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제 수능 커리어를 여기에 적어볼까 합니다.
무시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
1. 처음 평가원(19 6평) 때입니다. 처음 본 평가원 시험은 천지개벽 그 자체였습니다. (국어 91, 수가 85, 영어 4.19%, 한국사 10%대 전후, 화1 42, 지1 41), 공부가 부족한 현역에게는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입니다. 당시 우리 반도 그렇고, 저도 완전히 성적이 개판이었습니다. 점수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등급으로 54654였으니까요. 그런데 철이 없을 그땐 점수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나고, 무너지고, 힘들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재밌는 것은 고작 수특+EBS로만 2~3등급은 물론이고 1등급도 뜰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진 저였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 1달 분량 공부하고 성적 잘 나오길 바라는...)
2. 다음 평가원(19 9평) 때는 공부를 해야겠지 했지만 정신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공부보다 심신 안정에 초점을 두고 여름을 후지부지 보냈고, 시험고 그냥저냥 봤습니다. 당시 등급은 24543, 국어 1컷이 높아서 고1~고3 때 시험 본 것 중 최초로 2가 떳습니다. 문제는 이 국어 때문에 또 수능 전까지 자만하고 있었다는 점이... 이때 사관 시험을 본다고 해놓고 접수 기간을 놓쳤고, 수시 접수도 까먹고 있었다가 3시간 전에 급히 집어 넣었던 어리숙한 현역이었습니다.
3. 첫 수능(19)을 맞이한 순간입니다. 모든 게 낮설고, 무지하게 긴장을 했었습니다. 홀수형, 자리, 마음가짐.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채로 수능을 봤고, 국어에서 막힘과 동시에 뒤에도 도미노처럼 무너지던 시간이었습니다. 밥도 먹히질 않습니다. 끝나고 어머니가 데리러 오기 전 산악 지역의 학교에서 노을을 보는데 그냥 주저앉아서 한 5분 울다가 안 운 척하고 나왔습니다. 등급은 43323, 예상보다 더 떨어질 줄 알았는데 간신히 최저를 맞추고 서울 모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4. 두 번째 수능(20)이었습니다. 19학번을 즐기느라 6, 9평도 안 보고(시험지조차 보지 않았습니다.), 공부량이 사실상 0에 가까웠지만 여유가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작년하고 다르게 문제는 어느 정도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등급은 33332로 작년보다도 성적이 잘 나왔고 수시 응시를 할 수 있었지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아니어가지고 딱히 대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5. 세 번째 수능(21)이었습니다. 일단 작년과 비슷하게 공부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년 수능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집에서나마 6, 9평, 교사경 등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주변 분위기 느긋히 관찰하면서 응시한 결과 등급은 22221, 큰 특이점은 없었지만 이 한 해만큼은 제가 수능 봤다는 것을 아무도, 가족도 모르고 있습니다. 마스크 쓰고 24석 시험을 보는 첫 해, 마스크 끼고 시험을 본 적이 없어서 그 점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내년엔 메디컬 합격증을 받을 것이라고.
제일 높은 곳에 난 닿길 원해.
6. 네 번째 수능(22)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현역 시절과 같이 6, 9평도 응시하였습니다. 메디컬 열풍에 휩쓸려서 다시 이 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 바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터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9평 때 성적 때문에 심각하게 도취해 있었습니다. (11211) 그러나 수능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곳입니다. 제대로 털렸습니다. 등급은 32133, 수학 가형이 공통으로 변한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작년보다도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국어가 어려우면 뒤의 성적들까지 같이 나가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이때는 방심했던 터라 이 점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이 반성했습니다.
7. 다섯 번째 수능(23)입니다. 전년도에 떨어짐과 동시에 나이, 병역, 자금 문제 등으로 신경쓸 것이 더 늘어났고, 공부 시간 자체는 작년 대비 2~3배 늘었지만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6, 9월까지 잘 버티다가 후반부에는 완전히 맛이 갔고, 그나마 공부량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수능장에 들어섭니다. 5번이나 들어오는 곳이지만 뒤에 놓인 현실로 인한 압박은 더 나를 누릅니다. 최선을 다해 응시, 가채점(기억상) 때는 전부 1이 떳고 드디어 이 판을 뜨는구나! 하는 감격에 제대로 자만해 있던 참이었습니다. 가채점을 제대로 하지 않은 대가는 참담했습니다. (평가원 확인) 이런저런 마킹 오류로 21213으로 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이 시험에서 5년 동안 처음으로 밀려쓰기, 맞게 풀고 다른 답 쓰기, 수학 13X 마킹 등 별의 별 실수를 다 했습니다.) 메디컬/서울대가 눈 앞에서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5번의 수능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끝일거라 생각했던 5번째 수능도 결국 6번째를 기다려야 하는 성적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5년 간 응시에 합격한 횟수는 단 한 번(아직 정시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것도 현역 수시 때라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난 왜 점수가 안 오르지라는 고민을 하였는데, 돌이켜보니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찍맞 아니었음 평균 4등급 수준이 실수 없었을 때 평균 1등급이 나오는 건 느리지만 분명히 성적이 오른 것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뭔가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가 않았습니다.
과거와 현재, 불과 4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2019년 대학교 처음 갔을 때의 그때 그 마음, 교수님과 친하던 그 시절이 사라지고 지금 저에게는 열등감, 후회, 비관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동기들은 하나 둘 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듯 싶고, 선배들은 떠나고, 학교 선생님들도 하나둘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잠시 멈춤, 그리고 여러분들의 글들을 읽어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현역 시절처럼 굉장히 오만해져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 시기에 그 여유로운 감정을 24살이나 되어서 찾으러 갑니다.
물론 학벌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계속 이 점에 압박을 받으면 올해도 시간낭비하다 6번째 수능도 망할게 눈에 선했습니다. 당장 올해도 국어가 어려운 편이 아니었는데 개인적인 압박감이 작년 수능 국어보다 심했습니다. 5년 간 느끼는 점이지만 역시 '수미잡'은 정말 명단어가 확실합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다 부숴버리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힘들었지만 결심했습니다. 일단 지원한 2곳에 모두 떨어지면 이를 시인한 후 2년간 휴학한 나의 첫 대학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초심의 마음으로 전공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처음으로 돈도 벌어보면서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풀릴때 쯤 다시 이 판으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미련을 가지기엔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일단은 현실을 직시하고 백의종군한 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더 겸손해져서 24수능에 돌어올 겁니다.
I go to ride till i die die
19학번 새내기 때 소심한 저를 챙겨줬던 15학번 학생회장 형은 졸업했고, 올해 23학번이 들어오는 지금 제가 그 형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짤의 빨간 글씨(정확히는 '반'을 끼워넣어야 맞습니다.)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불평하지 않으렵니다. 올해 다시 대학생활 재미있게 보내다 다른 곳으로 떠나렵니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죠.
이제 고등학교 입학하던 시절만큼 미래로 가버리면 30대가 됩니다. 언제까지 애처럼 살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진정한 성인(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기입니다.
누군가는 한 번에, 남들보다 빨리 입시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몇 년을 해도 힘든 사람, 아예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래도 성적이 오르는 편이고, 대학도 있으며, 가능성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올해 입시를 마무리 지을까합니다. 16~17시즌부터 같이 지내왔던 오르비... 정들었습니다. 같이 23수능 치르신 여러분들 그리고 올해 24수능 치르시는 여러분들, 응원합니다. 그리고 잊지 맙시다. 끝날 때까지는 절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걸.
멋진 결말에 닿게, 불길 속에 다시 날아 Rising
감사합니다. 오르비 일원 여러분.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인논... 2
메가재종 다니는데 논술 널뛰기 걍 어처구니가 척척 걸어감 ㅈㅂ 논술로 가고 싶다...
-
성적표가없음 ㅠㅠ
-
작수보다 훨씬 잘봤는데 제자리일리가 없잖슴 ㅡㅡ ㅠㅠ
-
수학만 파면 나머지 과목 감 다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판단이 안 섭니다 ㅈ된것 같아요..
-
진로는 회계사입니다! 회계사가 되기에 어디 경영학과가 제일 좋을까요 ?? 목표로 딱...
-
5일을 쉬었네 5
하…..하루에 공부 3시간도 안함요 망했다 의지가 싹 사라졌는데 어떡하지
-
다시 ㄱㄱ
-
아무리 서울대여도 1.0인데?
-
나온다는 신의 계시를 받음 뇌사 판정 기준의 모호함과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나온다고 신이 말함 ㅇㅇ
-
매일매일 조급해하니까 더 진도는 안나가고 시간은 흐르고 실력은 제자리인 기분인거같다...
-
집중력을 더 키워야 겠고 약점보완 위주로 공부해야겠고 그래도 과목밸런스 챙겨야겠고...
-
인생망했다
-
한완기 본편 지금하기엔 너무헤비한거같은데 이거약간 라이트한거임?
-
노래방입갤 2
캔맥주도팔아서좋아요!
-
텔레그노시스 돌려보다가 든 생각인데 학과 이름을 왜 저따구로 지은건지 모르겠음 그냥...
-
마히게다
-
마음이 너무 급해서 qed도 쌓여있고 스탠은 상반기부터 밀려서 걍 포기했고 와중에 시중컨도 풀고싶음
-
천장. 1
-
제가 이제 지방에서 인문논술 하는디 어제 상담 갔거든요.! 근데 이론 수업 따로랑...
-
밸런스게임 6
대학교와 학점(평점)
-
ㄱㅐ빡치네
-
인싸라인 건동홍? 연고전의 고연대?
-
ㅠ
-
500일의 기적 2일차 10
오늘 10시간 넘게 할 수 있었는데..
-
강x 0회 77인가 80이었는데 강k 가면 70대 뜸?
-
백분위 92 96 2 98 89 인데 이게 중앙대 전전 20퍼밖에 안되는 수준임..?
-
좋아하는 노래
-
아직 시험 보진 않았는데 꼬라지보니 3.0 이하는 확정같음 1학년 총합 1.4였다가...
-
강대X 1회 2
개맛도리네 문제들이 재밌음
-
나 야맹증인가 0
칠흑 속에 뵈는게 없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조차도 무서워
-
이번 시험 조져서 확률은 낮긴한데 정시 공부나 하다가 넣어볼까
-
서바이벌 현장응시인가요? 수업하나요?
-
수학 80점에게 고함 17
너네가 15번찍맞으로 80이면 2등급실력이고 15번 풀맞 or 15틀 80이면...
-
아 뗄까 5
으윽
-
6평 1등급이면 그냥 ㄱ?
-
1.은마사거리 2. 버스정류장 광고가 싹다 인강쌤... 울동네는 애초에 버정에...
-
우웅 나 여부이 1
하트 1000개 되면 존예 얼굴 인증함~
-
강의누구듣는지뭐듣는지는 성적에아무영향없다 똑같은 문제를 풀어도 그시간내에 소모하는...
-
그 전에는 무슨 똥글 싸면서 놀았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
기분이 착잡하다 4
아주 많이 재밌었던 미팅이 하나 있었고 에프터도 했지만 결국 내가 망쳤고 그렇게...
-
현역정시러분들 4
학교다니면서 공부 시간 확보 괜찮게 나오나요? 방과후에 효율을 극대화 시켜서 공부하시나
-
내신 : 2.25 - 1.96 - 1.08 - 1.42 - 2.00 6모 :...
-
후자는 다시 나와도 무조건 풀고 전자는 푼지 좀 돼서 다시 나오면 무조건 틀릴거같은데
-
오부이들 머해 26
설마공부?
-
화작 88 미적 74 영어 3 한지 89 사문 88 이걸로..국숭세단 낮은과 가능하나요..
-
똑같이 1500원?
-
지구과학 사층리 2
왜 문제에서 사층리가 나올때 2개씩 주는 건가요?
-
옛날에 비누없을 때 물로만 씻고 잘만 살았는데 현대라고 안될거뭐있음ㄹㅇㅋㅋ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당
다 잘 될 겁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시면 꼭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