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24-10-25 01:40:53
조회수 2,731

왜 경제학과 교육학을 공부하는가

게시글 주소: https://m.orbi.kr/00069608163









 이번 주는 제 인생 중에서, 가장 고단했던 시험 기간인거 같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학생 설계 전공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했고, 그걸 끝내자마자 그동안 미뤄두었던 시험 공부를 허겁지겁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몰아서 하느라고 감기약과 카페인을 흡입하면서 오늘까지 딱 3개, 절반 정도의 시험을 치르었고 아주 잠깐 짬이 나서 자고 왔습니다.




 남은 2개의 소프트웨어 전공 시험의 경우 단순히 머리에 있는 지식의 양이나 이름, 정의, 개념 일치 여부보다는 좀 더 쾌적한 컨디션에서 제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자기 관리가 필요하기에 휴식을 취하면서 머리도 다시 돌릴 겸 칼럼을 써봅니다.




 제가 평소에 교육에 대한 관심과 오랜 시간동안 활동을 하다가, 신경과학, 그것도 신경경제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제 입장에서는 굳이 설명을 할 필요를 전혀 못 느낄 정도로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데, 의외로 주변에서 제 선택의 과정과 이유를 잘 납득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관련 썰을 좀 천천히 풀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전통적인 교육학과 경제학은 서로 접점이 다소 약한 편입니다.(제가 느끼기에는) 그나마 교육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경제학, 실용성과 관련된 것이라면 인적 자원 관리론? 그러니까 HRD라고 해서, 개인이 회사나 조직에 입사 이후 추가적인 교육과 관리, 컨설팅을 통해 생산성을 발전시키고 팀워크가 중요한 조직에서 적절한 갈등 관리를 하는 것 정도가 경제학, 실용성에 가까운 분야일 것입니다.




 물론 한국이 경제 성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높은 교육열 덕분에 큰 덕을 본 것처럼, 전반적인 교육열과 교육 수준은 당연하게도 경제 발전과 이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고전 경제학과 고전 교육학은 서로 관계가 좀 많~이 떨어져보이고, 오히려 약간 물과 기름 같은 느낌이 듭니다. 왜냐하면 교육 분야에서 경제학과 실용성, 생산성 같은 현실적인 가치를 너무 추구하면 비교육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코그니타 사피엔스 : 아.... 신경경제학 너무 멋지다

https://x.com/Beep_Beep4/status/963096376459517952








 반대로 경제학에서는, 좀 극단적인 실용성을 추구할 경우 사람의 교육에 투자를 해서 생산성을 증가시키기보다는, 그냥 애초에 돈을 가지고 생산성이 높고 화려한 경력과 성과를 보여주는 사람을 스카웃해오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빠르고 확실하기에... 고전 경제학에서는 교육을 목적지향적이지 못한, 다소 부차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느낌도 좀 들긴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경제학 관련 칼럼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경제학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물질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학문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경제학은 단순히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주주들에게 배당 이익을 많이 쥐어주기 위해 발전하는 학문이라기 보다는, 좀 더 본질적으로 표현하자면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어떤 것이 진정 합리적이고 궁극적으로 더 큰 효용을 가져와주는가" 에 대해서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경제학이 신경과학과 결합하여, 인간의 선택과 합리성에 대해서 이제 신경계, 뇌과학 수준에서 접근하는 순간 신경경제학은 '미시경제학'으로서의 성격이 매우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경제학 전공자는 아니라서 확실하게 단언을 할 수는 없으나, 미시경제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개인의 선택과 행동, 수치로 잘 표현되지 않는 세세하고 미세한 개인 차원에서의 선택에 대해서 더 집중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 -> 신경경제학으로 가는 순간 이제 사람의 입장에서, 좀 더 개인의 입장에서 합리적이고, 구체적으로 머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탐구를 하는 인문학적인 성향이 더더욱 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교육에도 관련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과거의 잘못된, 비합리적인 선택을 후회하고 그것에 대해 교훈을 삼아 피드백을 얻어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학습하였다 공부하였다 실수를 극복하였다' 라고 표현하기 때문이죠.




 신경경제학은 더 좋은 선택, 더 합리적이고 효용이 높은 좋은 decision making을 하기 위한 학문인데, 당연히 그것을 위해서는 좋은 learning과 education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좋은 decision making은 인간에게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풍요를 가져다주고, 그렇게 생긴 여유가 다시 교육에 재투자되어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죠. 









 워낙 제가 경제학을 겉핥기 식으로 대충 배웠고, 깊이 있게 많은 다양한 전공 수업과 내용을 학습한 적이 없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느라 쓸데없이 말이 길어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평소 교육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스스로 공부, 학문, 학습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경제학과의 접점을 찾게 되었다~ 정도로만 바라봐주셔도 상관이 없을 듯 합니다.




 제가 앞서 길게 풀어서 조심스럽게 전개한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이해를 돕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가져와보겠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합리적이고 좋은 선택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합리적인 선택에는 경제적, 물질적 효용과 보상 또한 매우 중요한 관심이 될 것입니다. 때문에 보통 경제학에 대해서 저 같은 일반인은, GDP 같은 수치 통계를 더불어 특정 직업의 평균 연봉, 기대 소득 등 숫자로 쉽게 환산할 수 있는 물질적인 요소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좋은, 합리적인 선택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물질적 풍요로도 이어지는 것이지, 무조건 물질적 풍요를 위하여 경제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거 같다가 제 생각입니다. 약간 본질을 벗어났다는 것이죠.




 특히 재밌게도 경제라는 말 자체가 '경세재민'이라는 뜻이거든요. 이 말의 뜻을 보는 순간 제가 여태 이야기한 것이 좀 더 와닿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 혼자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레요~ 다른 사람들이 굶어 죽든, 내가 그 사람들의 소중한 무언가를 빼았고 착취를 하든 상관이 없어요~ 라는 느낌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상하게 평소에는 경제학 이야기를 하면 스크루지 할아버지를 쉽게 떠올리죠)




 여러분이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라고 생각을 해보고, 여러분 밑에 많은 부하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이번에 경기가 좋아서, 회사가 돈을 한 1000억 정도 벌게 되었습니다. 와!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회사 직원들에게 "우리 모두가 열심히, 모두가 평등하고 균일하게 일을 해서 번 돈이니까,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눠가지자 n빵 하자" 라고 굉장히 순수하고 선한 마음에서 제안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는 순간 폭동이 납니다.




 분명 누군가는 남들보다 더 많은 희생,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시간과 기회를 날리면서 더 열심히 근무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남들 뒤에 숨어서 꿀을 빨면서 일을 했을 것이고 그 모습을 남에게 들켰을 것입니다. 여러분 팀플이든 조별과제이든 굳이 제가 설명을 안해도 알겠죠?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얻는 것이 꽤나 특수하고, 오히려 n빵이 더 비합리적이고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지혜를 발휘하여, 아주 적절하게 이 성과를 잘 나누어서 모두가 만족하거나(아니면 최대한 만족시키면서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분배가 합리적이라고 공감하며, 지지할 수 있도록 충실한 이유와 근거를 들어 적절하게 배분을 해야 합니다. 그게 리더십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평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병원에도 적절히 가질 못해서 몸이 많이 상한 A 직원에게 성과급은 물론 휴가와 병원비를 보조해주고, 다른 팀원을 험담만 하면서 남에게 업혀서 꼼수를 부리던 B 직원에게는 엄중한 훈계와 경고, 징계를 주고 그 사람이 실제로 기여한 몫에 합당한 몫만 지급을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당신의 공명정대한 판결과 분배를 만족스러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적절한 분배는 모든 직원들에게 합리성을 각인시켜서, 자신의 역할에서 최선을 다하면 상을 받을 것이고, 이상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메세지를 줍니다. 그러면 B 직원처럼 평소에 배짱이처럼 꼼수나 부리던 놈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거나, 아니면 태도의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A 직원은 자신의 기여와 희생에 만족스러워 하면서, 합리적이고 타당한 보상을 해준 당신을 신뢰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궁극적으로 전체의 생산이 높아질 것입니다.




 정 극단적인 반대로, 직원 B 같은 놈들에게 모든 보상을 몰아줘서 실제로 열심히 일을 하고 희생을 하는 것보다는 정치질이나 하고, 남을 헐뜯고 험담하여 깔아내리는 쓰레기 같은 놈들이 보상을 받고 승진을 하고, A 직원은 병가를 썻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면, 결국 당신의 회사에는 B 같은 쓰레기가 넘쳐 흐를 것이고, 쓰레기가 아닌 사람들도 쓰레기 짓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좀 스케일이 커져서, 국가의 왕이 이런 식으로 경영을 하면 나라 꼴이 무슨 꼴이 될까요? 비합리적인 선택이 악순환을 불러오고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위협에 빠뜨리고, 국가가 흔들리고 외세의 침략에 약해지고 사회에서 특히 약자들은 더 심한 고통과 억압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고 뚜렷하게 갈리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성과 중심자에게 몰아주는 식으로 배분을 하면, 묵묵히 어렵고 힘들고 잘 드러나지 않은 일을 한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고, 그렇다고 거꾸로 평등과 보편성을 추구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양을 일반에게 나눠주면 진짜 하루에 3~4시간씩 일하면서 갈려나간, 수명을 줄여가면서 일한 사람은 배신감을 느끼고 다른 곳으로 가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학은 조금만 잘못 말해도 정치 떡밥으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좀 더 노골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어떤 식으로 배분하고 누구에게 더 줘야 하느냐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분야거든요. 당연히 경제와 정치 둘 다 잘 된다면 사회가 안전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것입니다. 나 개인은 각자 어느 쪽 방향이 좀 더 타당한지, 어디에 더 큰 가치를 두는지에 따라서 왼쪽 오른쪽 좌파 우파 진보 보수로 나뉘게 되는 것이죠.




 주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왕은 그래서 도끼로 찍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답니다. 도끼로 사람을 찍는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지점과 균형을 잘 찾아서 그것을 찍어서 기준으로 삼고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국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기침을 하여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처단하여 국가와 사회의 안전, 번영을 도모하는 금부장과 대통령(?)님. 남에게 피해를 주었으니 응당한 대가를 치르어야 합니다. 노마스크를 한 명 처단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안전과 평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동양에서만 경제학이 경세재민이라고 하여, 보편 다수의 행복과 번영을 위한 정치적 정의에 대해 깊이 관여하는가! 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서양은 분석적이고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동양은 포용적이고 정치적이며 감성적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당연하게도 이 세상은 이분법으로 쉽게 나눌 수 없는 복잡한 세상입니다.




 특히 재밌게도 서양에서도 경제학과가 세워지고, 경제학 이라는 분야가 발생하게 된 과정도 경세제민의 의미와 일맥상통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기 전까지, 많은 서양의 지도자들은 단순하게 생각을 하였습니다. 금이 가장 가치가 있는 재화이고 보물이니까, 각 국가는 금의 보유량에 비례하여 부유한지 판단할 수 있고, 어떻게든 국가는 금을 무지막지하게 쌓으면 그것이 성공이요 곧 풍요라고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엄청 크게 틀린 생각은 아닌거 같습니다. 금은 보통 어디서나 귀중하게 쓰이는 자원이긴 하니까, 일단 쌓아두면 어딘가 필요할 때에 음식이 되었든 경호원이 되었든 사서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근데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서 반론을 제기한 것이죠. 국가 금고에 금이 가득 쌓여 있는데, 막상 사람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고, 기술력이 부족해서 원하는 물건을 쉽게 만들 수 없고, 질병에 노출된 사람을 치료할 수가 없다면, 막상 금고에 금은 많이 쌓아두었는데 그것을 제대로 잘 바꿔서 활용하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물건과 교환하여 내게 이득으로 추구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는거 아닌가? 라고요.




 지금 현대의 입장에서 보면 애덤 스미스의 지적이 정확합니다. 여러분이 지갑에 1천 억이 있다고 부자인 것이 아니죠. 그 1억을 쓸 수 있을 때만 부자가 되는 것이죠. 쓸 수 없는, 통장에 잔고로 1억이 있다면 그건 휴지조각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 그래서 애덤 스미스가 보았더니, 국가가 부유하고 많은 사람들이 풍족한 것은 다름 아니라, 쉽게 말해서 각자의 역할에 이기적으로 충실하게 일을 다 열심히 해서,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적절하게 주고 받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질은 금의 보유량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 국가를 이루는 구성원, 사람, 국민들이 풍족하고 다양한 서비스와 혜택을 서로 누리고 교환할 수 있을 때 풍요롭고 부유한 것이다~ 라고요.




 실제로 서양은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막대한 은과 금에 푹 빠졌습니다. 이전에는 엄청 희귀한 물건이었는데, 어디 신대륙 가서 총을 쏴서 겁 좀 주니까 황금과 은을 막 준다! 그거 가져와다가 우리나라 창고에 박아 두니까 기분도 참 좋고, 이게 진정한 부자라고 착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담 스미스에 대한 책을 한 권만 읽어본 사람은 이 사람이 극도의 냉혈한으로 각자의 이기주의적인 태도만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굉장히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보편적인 정의와 합리성, 포용성, 도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와 더불어서 '알프레드 마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칼럼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람인데요, 그 사람의 ebsi 다큐를 일부 가져와보겠습니다.








산업혁명에 성공하여 엄청난 상품이 생산이 되었으며 품질도 좋아졌는데, 그런 와중에 부자가 많아지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거꾸로 가난한 노동자들은 가난에서 전혀 탈출하지를 못하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수학과 언어를 활용해서, 사회와 사람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이것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결국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가난을 극복하고 부유해질 수 있는가?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4027901







 올해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이 발표가 되었는데,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특히 남북한의 차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고민을 하고 연구를 했다고 하더군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합리적이고 공정한 효율적인 자원의 분배와 사회 안전망, 민주주의를 통한 다수의 참정권의 발휘 등 다양한 요소가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발생시켰다고 설명을 합니다. 북한처럼 김정은 같은 소수의 최고 권력자가 모든 무력을 동원하여 다수를 착취하는 사회가 아니라, 각자 구성원의 몫에 합당하게 돌아가는 사회가 더 건강하고 부유한 사회라는 것이죠.




 특히 이 분들이 복지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강조한 것이 흥미로운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선심성으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목적 정도로 복지를 바라보면서 저평가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극단적인 위험에 대한 예방을 통해 사회 구성원이 안전함을 느끼고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체 공동체의 부유함으로 이어졌다고도 이야기를 하십니다.




 게다가 이러한 고전적인 경제학에서 좀 더 나아가서, 신경경제학은 더 구체적으로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고 대물림을 하는지를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내용이 약간 충격적인게, 가난하면 뇌의 회백질 영역이 줄어들고, 그것이 유전이 되어 3대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한 세대의 가난과 빈곤은 단지 그 세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에도 큰 영향을 주어서 악영향이 오랫동안 이어진다는 것은 굉장히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장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 연이은 625로 전 국토가 갈아 엎어졌었고, 대한민국에게 20세기는 정말 암울함 그 자체입니다. 불과 반세기 만에 극단적인 빈곤에서 벗어나긴 하였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 드리운 극우와 극단적인, 편협한 사고방식이나 과거의 망령, 잔재는 쉽게 청산되지 않고 사회 관습적으로는 물론 심지어 우리의 몸에도 영향과 그 흔적, 흉터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가난은 낮은 수준의 교육과 불청결, 질병, 스트레스, 뇌 발달 저하 등 여러 영향을 미쳤고, 생각보다 인간은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큰 영향을 받더라, 실제로 극단적인 가난 속에 사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도 극단적인 우경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들의 낮은 수준의 사고력은 가난의 영향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7CjjvMwCEJA&ab_channel=EBS%EC%9E%AC%EB%AF%B8%EC%9E%88%EB%8A%94%EC%83%81%EC%8B%9D









 이후에도 자세히 썰과 이야기, 제 견해를 설명하겠지만 전 교육이야말로 사람의 물질적 풍요를 달성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평등, 인권의 실현,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과 정치의 정상화, 사회 정의의 실현 등 다양한 가치와 목표를 달성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난을 극복한 부모님을 우연히 잘 만나서 훌륭하고 좋은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받은 덕분에 제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큰 행운 속에서 적절한 보호와 자극, 컨텐츠를 통해 잘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세종대왕처럼 한민족 기준 최고의 천재가 발명한 한글 덕분에 특별한 가문에 소속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혈통을 타고나지 않았음에도 이 세상에 대해 서술하는 훌륭한 도구인 언어 공부를 잘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편견을 약간 더 극복하고 정확히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글 창제와 배포에 반대를 하던 신하 중에서, 백성은 개돼지이고 계도를 해도 절대로 계몽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신하에 대해서는 매우 크게 분노하여 노발대발하며 대왕님이 쫓아내버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제가 누리는 다양한 물질적 정신적 혜택들이 이러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큰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 이러한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신념과 추동력을 바탕으로 교육학에 대해서 깊이 파고 있었던 와중에 또 우연히 이대열 존스홉킨스 신경경제학 교수님의 <지능의 탄생>을 통해서 신경과학, 신경경제학을 보는 순간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이게 내가 진정 가야 할 길이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구나!




 그래서 저는 굳이 별다른 설명이나 추가적인 조언도 필요가 전혀 없었고, 신경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접하는 순간 이곳은 내가 평소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내가 이미 공부하고 관심을 가지던 부분들과 일맥상통하는 동일한 주제라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그렇게 생각의 전개가 빠른 편이 아니고, 오히려 저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간 영리한 친구들이 저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전광석화처럼 문제를 풀거나, 생각의 긴 과정을 거쳐서 결론에 다다르곤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저는 신경경제학이라는 분야를 보자마자 이게 내가 평소에 공부하는 교육학과 긴밀하고, 실제로 이대열 교수님께도 여쭤보니 교수님 또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며, 좋은 교육은 곧 좋은 decision making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고 마찬가지로 공감을 하시더군요.











 가끔 제가 평소 교육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가, 왜 뜬끔없이 신경경제학, 신경과학, 뇌과학으로 뛰쳐들어가게 되었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무척이나 신기하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정말 비슷하고 똑같은 학문인데 말이죠. 굳이 중언부언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원래 같은 것이고,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는 것들이기 때문이었죠.




 특히 이대열 교수님의 <지능의 탄생>과 더불어, 홍콩과기대 김현철 교수님의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을 적극 추천합니다. 마찬가지로, 환경이 어떻게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그런 환경을 잘 구성하여 어린이와 약자, 노인, 임산부에게 적절한 복지를 제공하여 궁극적인 사회의 발전과 풍요를 달성하는가에 대해서 흥미롭게 풀어낸 책입니다. 이 교수님도 마찬가지로 저와 굉장히 비슷한 생각과 계기를 통해 공부를 하시게 되었더군요.











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시간과 노력, 자원을 투입하여 공부를 하는가? 에 대해서 전 개인적으로 일단 호기심이 강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신기한 것이 많고, 궁금한 점이 있었으며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게 알아갈 수 있었고, 그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운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들에 대해서 매우 당연한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운이 나빴다면,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쓰고 제 생각을 남에게 전달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제 개인적인 감정도 곁들여서, 이 세상을 왜곡하고 이상하게 해석하여 남에게 그릇된 사상을 강요하는 나쁜 놈들을 아주 쎄게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예전에 일뽕 정교하고 정확하게 패자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나쁜 놈들을 패고 정의구현을 할 때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제가 나름 타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디어와 결론들을 검증을 잘 받고, 더 뛰어난 전문가들에게 심사를 받고자 열심히 학위를 위해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예수님이나 부처님처럼 멋지고 훌륭한, 본받을 만한 뛰어난 선배님들의 길을 따라가면서 저 또한 개인적으로 유명해지고 명예도 얻으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도 있습니다.






rare-세종대왕

0 XDK (+1,000)

  1. 1,000

  • 無知何偈 · 1314511 · 10/25 10:37 · MS 2024

    신경경제학에 문외한이라 여쭙니다. 흔히 행동경제학이라 칭하는 분과와는 다른 분야인가요?

  • Cognita Sapiens · 847641 · 10/25 21:43 · MS 2018

    많이 다른 분야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여전히 경제학의 하위 분과에 포함되지만, 신경경제학은 신경과학 하위 분과에서 경제학의 큰 영향을 받은 분야로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역사나 단순한 범위 구분으로 학문을 함부로 분류하는 것이 다소 위험하고, 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학문들이 서로 범위와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필요 까지는 없을듯 합니다

    제가 소개한 이대열 교수님 또한 학부는 경제학도 출신이지만 현재 신경경제학 연구자로, 신경경제학은 주로 신경과학적 통계학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의 과학적, 수학적 지식과 도구를 활용하여 생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행동경제학과 많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테드ㅇ3ㅇ · 1267153 · 11/06 19:22 · MS 2023

    행동경제학은 심리학을 접목시키는 거라면은
    요새 말하는 신경경제학이나 생물경제학은 아예
    생물학을 접목시키는걸 말하는거임
    이런 경제적 선택을 내렸을때 뉴런이 이런반응이있었다 이런거

  • 물2버린허수 · 1059337 · 10/26 20:31 · MS 2021

    짤 혹시 코이치랑 키시베 로한인가요

  • Cognita Sapiens · 847641 · 10/26 22:19 · MS 2018

    패러디의 패러디인데 잘 아시네요 ㅋㅋㅋ 하여튼 멋지다고 감탄하는 김성모 만화 패러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