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킨스틴 [438970] · MS 2012 · 쪽지

2016-01-03 1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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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지식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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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의 배경지식에 대한 글이 몇 개 올라와서 읽어 봤습니다. 비문학에서 배경지식 능력의 유무는 매번 논란이 되어온 주제였습니다. 글을 읽는 와중에 배경지식에 대한 평소 생각을 정리해야 겠다 싶어 글을 씁니다. 취사 선택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가끔 보면 국어는 배경지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서 독해법 배울 시간에 책을 읽어 배경지식을 함양하라고 한다. 내가 아는 유명 강사도 2명이나 이런 말을 해 왔다.


물론 틀린 얘긴 아니다. 독해력 향상의 가장 기본적인 훈련은 배경지식 늘리기니까. 독해력의 본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 외부에서 입력되는 정보를 비교 취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저장하는 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자기만의 방법’이라는 것.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서 이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것만 봐도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 개념의 핵심은 전달된다. 배경지식을 함양하는 방식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정말 배경지식을 늘리는 것이 수능 국어 독해력의 전부인 걸까? 이런 자명한 진리를 놔두고 학원 강사들은 왜 독해법 강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걸까? 이에 답하기에 앞서 수능 국어 시험에서 그렇게 중요시되는 배경지식을 어떻게 하면 함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수능 국어 시험에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강사들이 있다. 이들은 A를 알기위해서는 B를 알아야 학고, 또 C를 알아야한다고 한다. 개념 학습을 무지 시킨다. 수능 국어시험은 포커스가 있는 시험이 아닌데, 하나의 암기 과목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지문 정리와 개념 자료로 넘쳐난다.


사실 수능 비문학 시험은 글 내에서 그 개념에 대해 알려주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문제에서 요구하는 정보를 찾아 이해하고 적용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해와 적용 연습을 하면 되는 것이지, 배경지식을 늘리는 공부법은 좀 위험한 공부법이다.


물론 학습한 개념이 나오면 도움이 되긴 하다. 그 부분은 빨리 읽고 이해할 수 있으니 좋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학습하지 않은 부분이 도처에 있다는 거다. 그래서 국어 지문을 개념 암기식으로 공부하면 멘붕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크다. 개념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범위가 무한하기 때문.


물론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수능 비문학에서 배경지식은 간과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훈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나 강사는 없다. 왜냐하면 범위가 없는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꿰서 독해력 향상에 도움이 되게 가르쳐야 하는데, 그런 수준에 도달한 강사나 교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문학 지문 수업은 열라게 잘 분석해 주는 강사가 자연과학을 그렇게 잘 분석해 주던가? 지문에서는 나와 있는 개념의 심도 있는 설명이라든가 변형되어 출제될 수 있는 연관 배경지식을 설명해 주는 강사를 봤는가? (한번이 아닌 매번) 단연코 없을 것이다.


이를 설명해 주기 위해서는 강사 스스로가 자연과학에 대한 개념을 마스터하고 있어야 하는데, 국문과 출신 강사에게 기대하기에는 무리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말한다. 비문학은 제시문 안에 모든 게 다 있다고. 그러면서 얼버무리고 만다. 2013학년도 수능 문제인 음성 인식 기술에 대한 제시문의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는 강사를 봤느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강사가 가르쳐도 모든 분야의 개념을 마스터해서 가르치기는 불가능하다. 배경지식의 중요성은 알면서도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사 스스로 공부해야하는데, 현재와 같은 학원 시스템하에서는 강사가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강의를 위해 연구해야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위해서 강의를 세부적으로 쪼개 놨기 때문에 강의 준비만으로도 벅차다. 제대로 공부해서 비문학을 강의하는 강사(모든 분과 학문들의 개념을 마스터해서 강의하는 강사)를 만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그런 강사가 있다면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겠지. 이게 된다는 소리는 글 읽는 방식을 제대로 가르쳐준다는 건데, 우리나라에서 기대하기는 무리다. 일본같은 독서 대국에서도 글 읽는 방식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고 유명 교수가 푸념하곤 했으니 말이다.


광학이성질체, 법선력, 인터루킨, 코돈, 확률 규칙 등 이런 자연 과학 개념을 비문학 지문에서 처음 봤다고 치다. 이에 대해서 국어 강사나 교사가 고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설명이 가능할까? 제대로 알지 못하면 쉬운 설명은 불가능하다.


에포케, 에크리튀르, 앙가주망, 테오리아, 르상티망, 에피스테메 등은 어떤가? 왈라스 법칙, 트리픽 딜레마, 헥셔 올린 정리, 티부가설, 피셔효과, 공매도 등은? 오명(스티그마), 회복적 사법, 구성주의, 성찰성 등의 개념은? 팔라디아니즘, 오르피슴, 공간주의, 아르누보, 옵아트, 바우하우스 등에 대해서는 어떤가?


위의 개념들은 모두 비문학 지문에서 언제고 등장할 수 있는 개념들이다. 철학, 경제학, 사회학, 미학 등의 학문 분과의 교과서를 펼치면 빈번히 마주치는 기본 개념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개념들이 나올 때마다 문학 작품을 설명하는 양만큼 설명해 주는 교사나 강사를 보았는가? 그것도 쉽게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등학생 수준의 눈높이’다. 예컨대 위 개념 중 하나인 ‘에피스테메’를 보다. 이 개념은 푸코가 만든 용어로 보통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기초 또는 각 시대에 따른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의미한다.


이 개념을 설명하는 비문학 지문이나 각종 철학 텍스트에는 이렇게 진술되어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이해하기 버겁다. 이럴 때 선생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학생 눈높이로 쉽게 설명 해 주어야 한다. “한 시대의 모든 학문에 공통되는 지식의 토대”라고 설명해 준다면? 아마도 이해 못할 학생을 없을 것이다.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교사나 강사라면 이게 돼야 한다. 이게 된다는 것은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거다. 어설프게 알아서는 저런 쉬운 설명이 절대 나올 수 없다. 자질이 되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는 게 배경지식을 늘려주는 교수법이다. 그래서 내가 누누이 위에서 이걸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이 거의 없다는 거다. 고교 강사 수준에서는.


사실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강사들이라면 이런 빈번한 개념들을 주제별로 잘 정리해서(마구 잡이 식 짜깁기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설명해 줘야한다. 그래야 배경지식을 기를 수 있다. 배경지식 함양의 첫걸음은 해당 학문 분과의 기본 개념 습득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현재 나와 있는 개념어 교재들은 배경지식을 길러주는 기본 개념어 교재가 절대 아니다!)


예컨대 비문학 모의고사에서 거래비용이론이 나왔다고 치자. 실제로 2010년 3월 학평 모의고사에 출제된 내용이다. 선생은 제시문에 나온 거래비용이론을 설명하면서 반드시 코즈의 정리와 외부효과에 대한 설명이 수반되어야 한다. 제시문에 나오지 않았다하더라도 ‘거래비용’과 ‘코즈의 정리’는 외부효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론(개념)들이기에 그렇다.


제시문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은 ‘거래비용의 역치’였지만,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교사나 강사라면 외부효과에 대한 경제학적 설명을 제시문의 양만큼 설명해 줘야한다. 그래야 제시된 내용뿐만 아니라 다른 비슷한 제시문도 배경지식을 활용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식으로 공부했다면 그 학생은 배경지식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2012학년도 수능 시험에 경제학의 ‘외부성(=외부효과)’에 대한 글이 출제됐기 때문. 사실 경제지문은 글을 다 읽지 않아도 개념만 알고 있으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다.


평소 배경지식을 늘리는 훈련을 꾸준히 해온 수험생이라면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건 명약관화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들어본 유명 강사들 강의 중 연관 개념을 곁들여 배경지식을 확장해 주는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 강사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제시문을 이해하여 설명하기 급급했다. 심지어 그래프를 경제학적으로 읽는 능력도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배경지식을 강조한다. 제시문과 밀접하지도 않은 이론들을 강조하면서. 그냥 인문 사회 자연과학 예술로 나눈 후 중요하다는 이론들을 짜깁기해서 앞에 첨부해 놓는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강사들의 책은 대부분 이렇다.


아마추어가 설치면 배우는 사람이 고생하는 거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이 유명 강사나 교사를 까려고 하는 의도가 절대 아니다. 배경지식을 함양하도록 가르치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어떤 강사나 교사건 자기가 모르는 분야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 분야의 글이 나오면 제시된 글에 한정되어 설명할 수밖에 없다. 가르치는 사람이 교양이 두루 정통하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정도 되는 사람이면 대학에서 학부 강의를 하지 입시학원 강사를 하지는 않는다는 거. 배경지식을 늘리는 교수법은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없다.


한편, 배경지식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독해법 강의를 들을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한다. 강의 들을 시간이면 4-5권은 읽을 수 있다고. 그렇다면 배경지식을 늘릴 수 있는 책이란 어떤 책을 말하는 걸까?


서울대 선정 고전? 아니면 고전 다이제스트 북? 일반 교양을 위한 책? 어떤 책을 읽어야 수능 비문학 배경지식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될까? 그것도 책하고 담을 쌓아온 학생들이 말이다. 배경지식 없는 학생들이 책을 읽는 곤욕을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 책을 읽기 위해 독해법을 배우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그리고 교양을 함양해 주는 책은 읽기 쉽지 않다. 책 한 권도 안 읽었던 학생이 한 번 읽고 책의 내용을 제대로 소화할리 만무하다. 2-3번은 읽어야하는데, 4-5권을 그렇게 읽을 시간이 대입 수험생에 있을까?


배경지식 함양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추천 목록을 제시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이런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을 읽는 건 시간 낭비다. 그냥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를 읽는 게 배경지식 함양을 위해 훨씬 좋다.


역사과(한국사, 근현대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일반사회과(사회문화, 법과정치, 경제), 윤리과(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 전통 윤리), 지리과(한국지리, 세계지리, 경제지리) 과학과(생활과학, 융합과학) 등의 교과서를 보면 웬만한 수능 비문학에서 출제되는 개념들은 모조리 학습할 수 있다.


제대로 읽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배경지식 함양은 이후에 부차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사항이지 배경지식 늘리기가 수능 국어 공부의 전부라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책을 많이 읽어 온 학생이야 무방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명 강사들이 독해법을 가르치는 거다. 핵심어가 무엇이고(핵심어를 찾는 과정에서 배경지식을 함양할 수 있다) 중심 문장이 어디에 있으며, 중심 단락은 무엇인지 찾는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사실 이를 제대로 가르치는 강사도 드물다)


이 훈련의 최종 목적은 ‘제대로 된 요약하기’이다. 이 요약하는 과정에서 글의 내용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배경지식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요약하기만 잘해도 독해력을 급상승 시킬 수 있다는 결론. 이는 내가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 각종 논문에서 그리고 교단에서 이미 검증된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비문학 독해에서 배경지식은 중요하다.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양 배경지식만 추구하다가는 이도저도 안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배경지식 함양은 글을 읽는 방법을 깨우친 뒤 해도 늦지 않다.


아울러 한 가지만 더 첨언하고자 한다. 이원준 강사 강의를 들어보면 논리학이 꽤나 중요한 것처럼 인식되는데, 사실 수능 문제에서 논리학은 무용하다고 잘라 말하고 싶다. 선택지 상에서 표현되는 명제 형식을 갖고 ‘논증 방식’으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수능 문제는 언어이해나 언어논리 문제가 아닌, 단순히 내용이해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제이론을 알면 도움이야 되겠지만, 그게 수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갖추어야할 어떤 조건은 아니다. 그거 몰라도 만점 맞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라는 건 논리학적 설명방식이 일게 강사의 문제풀이 기술이라는 걸 알 수 있겠지.


지금까지 아주 길게 말했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간단하다. 글 읽는 방법(독해법)을 연마한 후 배경지식 함양을 공부해도 늦지 않다는 거. 제일 좋은 방법은 제시문을 분석하면서 배경지식 공부도 함께하는 거다.


제시문 분석 방법은 내 이전 글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위에서도 간단히 말했지만 핵심어와 중심문장을 찾은 후 중심 단락을 찾으라는 거. 그 다음 한 300자 정도로 요약하는 연습하는 거. 이게 바로 제시문 분석의 골자다.


그럼 배경지식 함양 공부는 어떻게 하는가? 간단하다. 제시문을 읽고 문제를 푼 다음 제시문 분석 들어가기 전에 몰랐던 개념을 작은 노트에 정리하는 것. 예컨대 어떤 제시문 내용에 ‘표상’이라는 개념이 나오면 제시문에 나온 내용으로 ‘표상’이라는 설명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된다. 사탐 개념 정리하는 식으로 하면 좋다.


그런 다음 영어 단어장처럼 수시로 보면, 어느 순간 문리가 트이면서 읽는 족족 이해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학생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3개월 정도 꾸준히 하면 국포자도 읽으면서 이해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겠다. 수능 비문학 공부의 요체는 독해법(나는 이를 형식적 접근이라 부른다)과 배경지식 함양(이를 내용적 접근이라 부른다)의 적절한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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